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군 vs 프랑스군 (문단 편집) === [[백년전쟁]] ===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중 제일 유명하고 제일 길었으며 제일 반전이 많았던 싸움. 프랑스의 가스코뉴 지방과 플랑드르 지방의 지배권 문제와 프랑스 왕위계승 문제가 얽혀 벌어진 전쟁으로 백년전쟁이라는 이름대로 무려 100여년이나 벌어진 전쟁이다. 초기에는 영국의 우세로서 흘러갔다. [[크레시 전투]], [[푸아티에 전투]] 등의 주요 전투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에게 계속해서 털려갔다. 이는 전술면에 있어서 무질서한 닥돌 위주의 공격을 한 프랑스군과 달리 영국군이 통일된 지휘 계통 아래 지속적으로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주력 병종인 장궁병을 통해 장거리에서부터 제압 사격을 퍼부으며 싸운 결과물이었다. 결국 주요 전투마다 패배한 프랑스는 [[장 2세]]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히는 등 치욕을 겪기도 했다. 그러다 '현명왕' [[샤를 5세]]가 즉위한 후 뒤 게클랭을 기용하여 적의 보급을 끊고 게릴라전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영국군을 괴롭히며 렌-디낭 전투, [[코르슈렐 전투]], [[퐁발랭 전투]], 몬티엘 전투 등 각지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두어 빼앗긴 영역을 거의 수복해 냈으며, 장 드 비엔 제독을 기용하여 잉글랜드의 해안을 약탈하여 큰 피해를 입히고 스코틀랜드에 상륙하여 스코틀랜드군과 함께 잉글랜드 북부를 침공하는 등 크게 반격에 성공해 낸다. 그러나 이후 프랑스는 기존의 실수를 반복하여 영국 왕 [[헨리 5세]]에게 [[아쟁쿠르 전투]]에서 대패하며 프랑스 왕위를 물려준다는 내용의 트루아 조약을 맺으며 다시 굴욕을 맞이하게 된다. 이후에도 연속해서 패배를 거듭하여 프랑스 왕가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. 그러나 영광의 최고봉을 맞이했던 영국군도 [[잔 다르크]]가 오를레앙 전투에서 등장한 이후 기세가 꺾였고, 결국 근본적인 체급 차이와 더불어 동맹인 [[부르고뉴 공국]]마저 영국과의 동맹을 단절하여 전쟁의 주도권을 상실했다. 결국 칼레[* 칼레는 이후에도 영국의 소유로 남아 있었으나 메리 1세 때 스페인의 편을 들어 전쟁에 참여했다가 상실했다.]를 제외한 나머지 지방의 통치권도 다시 프랑스 왕실에게 반납하게 되며 섬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게 되었고, 프랑스는 현 프랑스의 영역을 거의 확정 짓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